하루키는 악의 축인가?

"취향에 대해서는 다투지 말라."

러시아 속담이다. 맞는 말이다.
어떤 커플이 서로의 취향에 대해서 트집을 잡고, 싸우기 시작하면 그건 갈라서자는 거다.
싸워봐야 얻는 것도 없고, 자존심만 건드릴 뿐이다.

정상위를 좋아하건, 여성상위를 좋아하건, 후배위를 좋아하건,
아니면 영화 "색계" 식의 아크로바틱한 체위를 좋아하건 거기에 절대선은 없다.
단, 선교사들만 제외하면 말이다.

서로의 취향이 맞으면 하는 거고, 다르면 맞춰가는 거다.
그 취향 사이에 "이메가"와 "친서민" 만큼의 간극이 있으면 그냥 헤어지면 되는 거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게 되면 취향이란 잘 바뀌지 않는 것임을 알면서
"너는 왜 내가 즐기는 체위를 같이 즐기지 못하지?" 라고 따지는 건 바보같은 일이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하루키를 둘러싼 모험 아니,
하루키에 대한 취향을 가지고 시비를 걸려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이다.

그걸 얘기하려면 아마 이 글은 상당히 길어질 것 같은데,
나는 소설 쓰는 하루키 따위는 도대체 관심없고 AV에 나오는 아오이 소라 얘기나 하자고 하면
그건 나하고 따로 얘기하자. 나도 아오이 소라를 좋아하거든... 

미몹처럼 건전한 블로그에서
무슨 체위에, 아오이 소라 얘기냐고 발끈할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미안하다.
나는 야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
내 취향을 존중해 주길 바란다. 싫으면 나가도 괜찮다....

한때 군바리들 사이에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필독서인 적이 있었는데,
그건 상당한 수위의 섹스신 묘사 때문이었다. 
혹시 아나?
나도 이 포스팅의 흥행을 위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처럼 중간에 짜릿하게 야한 얘기를 한두개 쯤 집어넣을지....
(이렇게 낚시질하는 재미... ㅋㅋ 안먹사도 이 재미에 낚시할까?)

* * *

얼마전 U2의 오노는 러시아의 메드베제프 대통령을 만나
모스크바 근교 자연보호림 "힘키"를 관통하는 고속도로 건설 계획 중단을 요구하면서
이렇게 운을 뗐다.
"나는 Led Zeppelin의 팬인데, 당신은 Deep Purple의 팬이라고 알고 있다.
 이 대립관계를 극복하지 않으면 대화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노련한 정치가인 메드베제프 대통령은 "Led Zeppelin도 내가 좋아하는 록그룹 중의 하나"
라고 화답했고,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진 끝에 다음날 고속도로 건설 계획이 중단됐다고 했다.  

나도 사실 Deep Purple을 은근히 (어렸을 땐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Led Zeppelin 팬이지만,
이게 Led Zeppelin이 Deep Purple보다 더 레전드라는 걸 증명하는 건 아니다. 
메드베제프는 산불 방재 비행기를 직접 조종하면서 산불끄는 푸친의 강렬한 이미지가 부러웠는지,
자기도 환경을 위한다는 이미지를 얻고 싶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이 글에서 하루키가 Led Zeppelin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건 아니다. 

Led Zeppelin - Deep Purple 처럼 어떤 대립항이 있으면 얘기를 풀어가기가 쉬울텐데,
미몹에서 내가 읽은 얘기는 "하루키 나빠요" 밖에 없으니, 좀 난감하긴 하다.

"하루키보다 이상이 더 좋아요" 라는 얘기도 하긴 하는데,
이건 마치, Beatles와 윤심덕을 비교하자는 얘기 아닌가? 
(오해를 막기 위해, 나는 이상도 좋아하고 윤심덕도 좋아한다.
 윤상은... 음...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Radiohead와 Oasis를 비교하는 식까지는 바라지도 않겠다.

굳이 국적이 다른 놈들끼리 비교하자면,
최소한 마징가 제트와 태권 브이 정도는 돼야 따져보고 비교할 맛이 나는 것 아닌가?
(누가 더 센지는 지금도 풀지 못한 숙제이다... 확실한 해답을 알고 있는 분이 있을까요?)

어쨌든 "하루키 싫어요", 혹은 "하루키 나빠요" 라는 아무것도 아닌 포스팅에
내가 하루키팬(?)으로서 시비를 걸면서 시작된 논쟁(?)이니,
이 구도대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 밖에....

* * *

모블로거가 문자를 보내왔다.

"하루키를 싫어하는 사람도 의외로 좀 있어요.
 신경이 날카로우신 것 같네요.
 편하게 보셔도 되지 않을까요?"

맞는 말이다.
누가 하루키를 싫어하든 말든 그냥 넘어가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나는 왜 그리 발끈했을까? 

내가 정말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런 과민반응을 보였던 걸까? 라고 따져보기도 했다. 

아이들 교육문제 때문이긴 하지만, 아내와의 다툼이 요새 잦아지기도 했고, 
올해 회사에서 내가 주도했던 프로젝트는 될 듯 될 듯 하면서 툭하면 엎어지고 하다보니,
신경이 날카로울만 하긴 했다.
지나치게 길었던 여름 날씨에 지쳐 있었던 탓이라고 그냥 얼버무리고 넘어갈까도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벌써 이십년도 더된 옛날 일이 떠올랐다. 

* * *

한때 나는 과학도였다. 
세상의 이치를 숫자와 실험으로 풀어내는 과학자가 꿈이었다. 
 
재미없는 책상물림이었던 나는 87년의 거리에서 세상을 바꾸는 힘을 느끼게 되었다.
역사가 바뀌는 순간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데에 흥분했고, 
내 몸 속에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뜨거운 피가 끓고 있음을 느꼈다.  

수근거리면서 이제 혁명이 다가 올거야.라고 속삭이다가,
우리가 혁명을 일으켜야 해...라고 소리쳤다.

역사가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며 혁명을 통해 더 높은 수준의 사회로 가게 된다는 건
교과서에서 배우지 못했던 짜릿한 세상의 이치였다.  
혁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세상은 사회주의라고 불렸다.  
사회와 역사에도 그런 이치를 알려주는 과학이 있음을 알고 나는 기뻤다.

그 과학은 책상에서 따지는 학문이 아니었다.
실천을 해야 하는 과학이었다.
학교에서 나는 탈춤반을 만들었고, 내 주장을 외치기 시작했다.
술자리에서는 끊임없이 토론을 하고,
같이 거리로 나가지 못하는 유약한 젊음들을 논박했다.
수업을 듣고 공부하는 건 나약한 타협일 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떤 조직에 들어가게 되었다. 
소꿉장난 같았던 어설픈 조직이었지만, 그때는 세상을 바꾸는 전사들의 부대라고 생각했다. 
(모블로거가 자기 아이디를 예수 군대로 정한 것과 비슷할 듯...) 

나는 부르조와 근성에 가득차있던 나란 사람을 진정한 혁명가로 송두리째 바꾸고 싶었다. 
당시 내 윗선의 노트에서 우연히 봤던
"열정적이나 너무 리버럴함" 이란 나에 대한 평가를 인정할 수 없어서였던 탓도 있었다.

조직에 강력하게 요청을 해서 
남들보다 먼저 공장에 위장취업하는 허가를 얻어냈다. 
돌아갈 근거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학교에서 일부러 짤렸고,
기숙사에서 나와 혼자 자취하며 위장취업을 준비하면서
이제 드디어 혁명가의 길을 갈 수 있게 된 게 너무 기뻤다.  

* * *

사고는 한번 터지니 순식간이었다.
내 윗선들이 모두 짭새들에게 달려갔다.
나도 긴급히 피신하고, 동태를 살폈다.
아무도 나를 찾지않는다고 했다.
나는 수배가 떨어진 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나란 사람은 경찰에서도 안 찾을 정도로 피래미였던 것이다.

갑자기 낙동강 오리알, 끈 떨어진 간첩이 된 나는 막막했다.
내가 할 모든 일을 조직에서 결정해 주었는데, 나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를 헤매다녔을까?
내가 학교에서 제적됐다는 소식을 들고 나를 찾아온 어머니가 내 피신처를 찾았다.
내 피신처를 알고 있던 친구가 어머니를 데리고 온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결국 고향에 돌아가게 되었고 대학을 옮겼다. 

어설픈 혁명가의 꿈은 사그러들었지만,
난 차선책으로 러시아어를 전공하기로 했다.
사회주의의 본고장인 소련에 대해서 잘 공부하기 위해서였다.

옮긴 학교에서는 나이도 많은 편인지라 일부러 과대표를 맡고,
아직 어린 친구들을 데모하는 데 끌고 다니곤 했다.
나는 그게 못다 이룬 혁명가의 꿈에 조금이나마 속죄하는 길이라고 여겼다.

다만 누가 학교와 전공을 왜 옮겼는지 물어보면, 그 진실을 얘기할 수 없어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원어로 읽어보고 싶어서 라고 대답하거나, 
하루키 소설에서 "쥐"가 얘기하는 식으로
전에 다니던 학교 앞마당의 잔디 깎는 법이 마음에 안들어서 라고 겉멋을 부리기도 했다.

* * *

내가 어떻게 해서 사회주의와 혁명의 꿈을 버리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소련이 무너져서?

경찰에 잡혀간 여자친구 수첩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 바람에
군바리 신분으로 나도 보안대에 이첩될까봐 무서워서? 

그 영향도 분명히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음악을 듣고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였던 것 같다.

바하의 무반주 첼로조곡을 들으며 갑자기 내 과거가 부끄러워져서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뒤늦게 까뮈와 카프카를 읽으면서
세상 이치란 것이 내가 생각하듯이 간단한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도대체 내가 나 자신과 가족과 친구들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던 건지 후회를 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그렇다고 하루키 때문에 내가 전향(?)을 하게 됐던 건 아니었다.
나는 하루키를 그 이후에 만났다.
하지만, 삶의 나침반이 되어줬던 가치를 잃어버리고 방황하던 나에게
하루키는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나말고도 "상실"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하루키를 받아들였고 그 "상실"은 치유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히려 하루키보다 더 큰 위안이었던 허수경 시인도 알게 되었고
혼자 시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 * *

복학을 하고 나서 나는 "진보"라는 레테르가 붙은 문학회에 들어갔다. 
시를 너무 잘 썼던 한 선배를 찾은 거였지만, 
예전에 내가 가졌던 혁명이라는 꿈에 대한 미련도 어느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리버럴"이란 딱지는 거기서도 문제였다.
예전의 나처럼 혁명의 꿈을 가지고 있는 선배들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문학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던 그들은 내가 눈엣가시였다.

그들은 특히 나의 취향을 공격했다.
당시 운동권의 금서이다시피 했던 하루키를 보면 경끼를 일으킬 정도였다.
퇴폐적이고, 나약하고, 겉멋들고, 허무와 개인주의로 가득찬 소설을 뭐하러 읽냐고,
이건 마약이라고...
그건 마치 기독교 광신자들이 다빈치 코드를 증오하던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하루키가 내게 알려준 건 "나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부족하고 못나고, 절망이고 환멸이어도, 그게 결국은 나 자신이었다. 

"나 자신"이라는 말은 내게 하루키 월드로 들어가는 샤프링의 키워드였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에 나오는 말을 인용해 보겠다.

하지만 만약 내가 다시 한번 살 수 있다고 해도,
역시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인생을 더듬어 대며 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나 자신이 되는 것 말고 또 다른 길이란 없다.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버리고, 내가 아무리 사람들을 버리고,
온갖 아름다운 감정과 뛰어남 자질과 꿈이 소멸되고 제한되어 간다하더라도,
나는 나 자신 이외의 그 무엇도 될 수는 없다.

내가 좀더 젊었을 때는,
마치 내가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다시 말해, 나는 카사블랑카에 바를 열고 잉그리드 버그만과 지인이 되는 일이
가능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좀더 현실적으로 나의 자아에 어울리는 더 유익한 삶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변혁하기 위한 훈련까지도 했다.
<녹색혁명>도 읽었고, 심지어 <이지라이더>같은 것은 세번 씩이나 보았다.
그러나 나는 매번 마치 키가 구부러진 보트처럼 똑같은 자리로 되돌아왔다.
그것은 또다시 나였다. 나는 아무데로도 가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거기에 머물면서, 내가 되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절망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래, 절망인지도 몰라.
투르게네프라면 환멸이라 부를 지도 모르고,
도스토예프스키라면 지옥이라 부를 지도 모른다.
서머셋 몸이라면 현실이라 부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가 그 어떤 이름으로 부르던, 그것은 결국 나 자신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을 찾아가는 길에 나섰다.

몇몇 맘 맞는 선후배, 친구와 함께 하루키와 마르께스를 읽었고,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를 들었다.
이런저런 영화를 보고, 전시회를 다녔다.
여행을 하고, 술을 마셨고, 시를 썼고, 사랑을 했다.

운동권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빈약한 상상력과 대자보의 뻔한 어휘력을 비웃었고, 
취직과 고시에 목맨 친구들의 성실함을 놀려댔다.  

그 와중에 겉멋들기도 하고,
잘난 체 하기도 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하고,
자학과 방황을 하기도 했다.

하루키는 한때 방황하던 나를 위로해 주었지만, 어떤 면으로는 나의 방황을 연장시켰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동전의 양면이 있고, 좋은 약에도 부작용은 있게 마련이다.

하루키의 키워드 중 하나가 "나 자신"이라면, 두번째는 "일상"인데,
나는 "일상" 면에서는 하루키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하루키처럼 매일 운동을 하며 날카로운 사유를 유지하지도 못했고,
매일 성실하게 소설을 쓰지도 못했다.

마치 치열한 고민은 술자리에만 있다는 듯이, 술에 탐님했고, 사랑에 빠졌다.

내가 하루키를 생각하면 가장 반성하는 부분이다.

그래도 내가 복학하고 나서 했던 일 중에 그나마 보람된 건 
내가 있던 동안에 진보 문학회가 자유분방한 취향이 넘치는 곳으로 변한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진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찾겠다고 나섰던 여행길은 오래 가지 못했다. 
졸업을 하면서 생업 전선에 나서게 되었고,
우리는 모두들 먹고 살기에 바쁜 인생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진보 문학회는 예전의 날선 "진보" 모습을 되찾아갔다.
나는 이른바 무림의 공적이 되었다.

* * *

내가 하루키에 대한 포스팅에 과민반응을 보였던 부분은 바로
옛날에 내가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느꼈을 때 내가 주위 친구들을 몰아쳤던 모습과,
내가 삶의 가치를 잃고 방황하면서 하루키에 위로받을 때 선배들이 나를 몰아치던 모습과
오버랩되는 장면이었다.  

자기 확신에 가득찬 사람은 주위 사람과 세계를 함부로 재단하고 칼질한다. 
광신도이건 얼치기 혁명가이건 마찬가지이다.

자기 확신에 가득찬 사람의 특징은 세상과 "공감"하는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자기와 주파수가 맞는 사람들과 집단을 형성하여 그 주파수를 증폭한다.
독수리 5형제가 합체하게 되면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악당들을 무찔러 간다.
정말 무시무시한 집단주의이다.

요새 며칠 하루키에 대해 들은 비판들은
대학 시절에 들었던 하루키에 대한 공격보다 더 잔인했다.

예를 들면 이렇다.

* * *

하루키는 현상이 아니라 증상입니다. 일종의 병이죠...

하루키는 뭘까?
영화시나리오작가를 포기하고, 재즈바를 경영하다 느닷없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그는 실은 영문 번역작가로 이름이 나있다.
자국에 알려지지 않은 외국소설 작품들을 모국어로 번역하면서 원작자의 소설을 읽고,
책을 출판한 뒤 다시 자기 책을 쓰면서 매 플롯마다 번역작품들의 스토리 일부와 아이탬을 자기 소설에 삽입한다면..
그래서 '쥐시리즈'가 놔왔나?


하루키는 창작소설을 쓴 게 아니라 "글쓰기"를 시도한 거다. 표절 혐의가 그 이유이다. 
 
하루키 소설에 유독 눈에 띄는 게 있다면 음악이다. 즉 소리다.
이건 분명 영화로 치면 'OST'다.
하루키는 소설을 집필하면서 그의 특징처럼 알려진 장치다.
이것저것 집어넣고 돌려보니 그럴싸한 영화같은 소설이 나온 것이다.
이것도 안되면 자기가 읽은 서양작가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그의 글을 집어넣는다.

하루키는 고미 야시키 (이곳 저곳에서 쓰레기를 모아놓고 치우지 않는 집) 이다.

하루키가 변비를 모르고 살았대요.
즉 삶은 즐기고 작품 속에서만 온갖 고뇌를 하겠다는 거지요.
제가 존경하는 작가들 중에 삶이 고뇌가 아닌 사람이 없어요.
하루키는 얼마나 일상에서 잘 가꾸는지요.

내가 하루키의 소설에 흥미를 잃은 가장 큰 이유는
가져본 적도 없으면서
잃었으니 공허하다고 우기는 듯한 이야기에 공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 그가 그리우니까 예전에 그를 사랑했나보다, 짐작하는 사랑이란 얼마나 허무하고 또한 '안전'한가.
그러나 현실의 그 어떤 일상도 위협하지 못하는 사랑처럼 사람을 메마르게 하는 것도 없다.

무엇보다 그의 작품엔 여백이 없다.
어쩌면 현대 일본인의 삶에서 여백처럼 거추장스럽고 다루기 힘든 '감정'도 없을것이고,
뒤이어 우리마저 같은 소용돌이에 빠져들면서 어색한 감정 공유가 일어난게 아닐까.

세상을 팔아먹은 사람.

* * *

게다가 하루키를 좋아하거나 따르거나 하는 사람은
졸지에 피리부는 하루키를 따라다니는 레밍스 쥐떼가 되어버린다.

하루키 표절한 한국작가들 많아요. 더 열심히 표절해서 뛰어넘기를 바래요.

유행을 쫓는 사람들이 미원과 다시다같은 잣대를 아무데나 넣고, 음식맛을 평가하려는 태도,
그 뒤를 쫓아 피튀기는 싸움끝에 줄대고 서성대는 어린친구들의 집단적 사고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이 사회를 뒤덮고 있다는 사실.
이런 사투의 과정 끝에 살아남은 자들 또한
누군가 "줄을 서시오"라고 외치면 바로,
뭔지도 모르고 '줄줄이사탕'으로 서있는 풍광이 오늘도 존재한다.

* * *

도대체 무엇이 그들에게 하루키에 대해 그토록 증오에 가까운 언사들을 쏟아붓게 만드는가?


그가 잘팔리는 작가라는 걸 인정하기 힘들어서?

사람들이 그런 수준낮은 작가에 빠지는 걸 보는 게 화가 나거나 그를 질투해서?

그가 정말로 인민의 아편이라고 생각해서?

그 때문에 한국은 물론 세계의 문화가 뒷걸음질친다고 생각해서?

* * *

사실 하루키가 소설 시장을 휩쓸고 있다고 하지만,
따져보면 작품마다 다 읽는 고정독자는 10만명도 안 될 것이다. 

폴 오스터의 1~2만명 고정독자에 비하면 많은 거지만,
블록버스터 영화 하나에 1000만명 넘게 드는 걸 보면 새발의 피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하루키를 한번도 안 읽어본 사람이 태반을 넘는다.
일테면 하루키 는 소수인 셈이다.

그런데도 왜 그들은 하루키에 그리도 화를 내는 것인가?

* * *

다음 번에는 그 얘기를 할 예정이다. 미몹 얘기도 함께 할 것이다.

    by Vertigo | 2010/09/08 01:51 | 유한남의 몰취미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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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by Ahn at 2010/09/08 11:32
    하루키 선생의 글이 주는 인상이 어떠하든 누구보다도 치열한 사람인지는 두 말할 나위가 없지요. '달리기를 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는 감명깊었습니다. 하루키는 하루키의 문학을 하는 것으로 좋습니다.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것이겠지만요.
    Commented by 스토리작가tory at 2010/09/08 15:30
    포스팅 자체에서도, 하루키의 영향이 엄청나게 느껴지네요.

    by Vertigo | 2010/12/08 17:32 | 유한남의 몰취미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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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ed by 강산이 at 2011/04/05 20:10
    잘 읽었씁니다.. 누구든 자신의 잣대를 가질 자유는 있으니 말입니다.
    하루키를 삶아 드신듯 하십니다.. 글이 너무 재미 있어서 몇편을 단숨에 다 읽었네요..
    아, 그렇게 느끼는 분도 계시구나 하면서..ㅎ
    Commented by Vertigo at 2011/04/09 02:10
    하루키를 삶아 먹지는 못하고 한때 끼고 살았던 적은 있지요.
    그런데 그것도 이제 옛날 얘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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