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18일
세이제(洗耳齊)에서 행복했던 눈과 귀를 떠올리며..
+ 세이제(洗耳齊)에서 행복했던 눈과 귀를 떠올리며..
길 위에서 | 2006-08-2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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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장보러 나가고,
큰애는 자전거 타러 나가고
둘째는 내 방 침대에 누워 책보고 있다.
편안한 일요일 오후다...
Roger water의 Pros and Cons of Hitchhiking 앨범에 빗대어
캐나다 여행기 4번째 글을 쓰려다가 게을러서
그냥 컴퓨터 사진첩을 뒤적이다 옛날 사진을 발견해서 여기에 올리려고 한다...
작년 한해 동안 내가 했던 일 중에 디자인에 관련된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때 모대학 산업 디자인학과와의 산학이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겨우 대학 3학년인 친구들과 만나서
디자인안에 대해 설명을 하고, 그 친구들의 디자인안에 대한 피드백을 하고,
어쩌다가는 MT도 가고 하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우습게도 질투였다....
세상 그 자체가 이제 앞에 놓여있는 젊은 친구들과 만나면서
그들에게 기꺼이 밥과 술을 사고,
엄청난 인생 선배인양 내 경험을 떠벌리고, 충고를 하면서도
정작 나는 그들의 젊음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산업 디자인은 소설이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라고,
혼자 맘대로 쓸 수 있는 소설과 달리,
영화 촬영 환경, 예산, 감독 생각 등 숱한 요소에 따라 계속 바뀌는 시나리오처럼,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따라, 개발 쪽과 마케팅 쪽의 의견에 따라
수도 없이 바뀌어 가는 게 디자인이라고,
내가 계속 얘기를 해도
자기 디자인의 고집을 꺾지 않는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나중에는 결국 꺾일 수 밖에 없는 열정이긴 하지만,
난 그 열정이 부러웠다...
젊다는 건 결국 실패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는 건데...
아직 변변히 갖춰 놓은 것도 없고, 이뤄 놓은 것도 없는데,
이제 더 실패할 여유가 없는 나이가 되버린 내 처지가 문득 쓸쓸해졌다....
하루는 산학을 총괄하시던 그 학과 교수님 댁에 식사하러 갔던 적이 있는데,
교수님댁 이름이 세이제(洗耳齊)였다.
귀를 씻는 곳이라는 뜻이었는데, 그날 저녁에 나는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파주에 있는 교수님댁 전경)
- 누구는 도루코 회사 사장집인 줄 알았다는데,
이 면도날 때문에 파주 전원주택 단지에서 교수님댁은 이정표로 통한다고 한다
(우편함에 있는 새겨진 집 이름)
- 난 이름이 있는 집을 가질 때가 올까? 또 가진다면 뭐라고 지을까?
해우소(解憂所)만 아니면 다 괜찮을 것 같기는 한데...
(현관 위로 난 창과 마감처리 안하고 날것 그대로 둔 콘크리트벽)
(1층 거실 안에 뻬치카와 나무 조각과 스피커와 흔들 의자가 있다)
(강아지 모양의 스피커, 교수님이 직접 디자인하신 거라고 했다.)
(1층 거실 한쪽 벽에는 액자들과 CD Player, 진공관 앰프가 자리잡고 있다...)
(1층 부엌을 가리는 얼굴 모양을 한 벽, 머리카락은 오래된 다리미이다)
- 저 구멍 사이로 음식들이 화수분처럼 계속 나올 것 같다.
(약간 이국적(?)이긴 하지만, 한식으로 꾸며진 사랑방도 있었다)
(한식 정원 한 구석의 장독대)
(벽들은 다 장식장 역할을 하고 있는데, 옛날 카메라가 이채롭다.)
(역시 장식장의 모습인데, 왼쪽은 여자 오른쪽은 남자이다.
사진 질이 좀 떨어지지만,
가슴 장식이 일단 다르고,
가운데 손잡이 모양이 오목과 볼록으로 다르고,
우스운 건 여자 입모양은 놀란 표정을 짓고 있고, 남자 입모양은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남미 장승의 모습, 아래에 옛날 타자기가 놓여 있다....)
(2층 한구석의 아들방인데, 여기 올라가려면 반드시 사다리를 타고 가야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음악실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아들방의 편의성은 희생했다고 한다...
아들도 미술 공부한다고 얘기들었는데,
술마시고 여기를 사다리타고 올라가려면 얼마나 고생했을까....)
(정원에서 교수님께서 구워주시는 바베큐를 열심히 먹고 술도 얼큰히 마신 뒤에야,
그때까지 공개하시지 않던 2층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나무 계단은 앞으로 당기면 수납장이 된다.
그리고 계단 중간에 김창열 화백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듯
물방울 모양 조각이 얻혀져 있다.)
(그 물방울을 클로즈업해보았다.)
(2층에서 바라본 1층 모습)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2층 음악실이었다...
교수님께서 직접 디자인한 스피커가 양옆에 놓여있고, 다빈치 그림이 위압감을 준다.)
(서로 음악 신청하는 모습...
교수님 말씀으로는 라이브로 듣는 음악이 제일 듣기에 좋은 것이고,
모든 기계는 라이브에 가깝게 들리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고 했다.)
(어느 레코드사인가의 로고였던 것 같은데,
강아지 주인이 죽고난 후 그 강아지가 주인이 즐겨 듣던 음악이 흘러나오자
스피커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다.)
(그 곡 제목이 하이든의 교향곡 "열정"이었던 모양이다.
카페트 가게에 주문을 해서 만든 거라고 했다.)
(애교 1)

(애교 2)
그날 음악실에서 우리가 들었던 음악은 주로 비싼 오디오 효과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을 만큼
극적이고 음량이 풍부한 곡들이 많았지만...
우리끼리 했던 말은 여기서는 메탈을 들어야 제격이라는 것...
Led Zepplin의 Since I've been loving you를 교수님 댁에서 듣고자 했던 내 계획은
결국 이뤄지진 못했지만,
글쎄, 내가 그날 그집에서 느꼈던 느낌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아직 한참 젊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 한없는 미래에 질투를 느끼듯이,
이미 한 일가를 이루고
황혼의 나이에 자기의 삶을 조용히 반추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나이듦에 대해서도
나는 아마 부러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동안 회사일하면서 일부러 숨겨왔던 내 영혼의 한쪽을 조금씩이나마 드러내고
소설책도 읽고 음악도 듣기 시작한 게 아마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 싸이부터 시작해서 이렇게 블로그도 하게된 것 같다.
나는 앞으로 내 남은 날들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다만, 스스로 내게 결심해 보는 건,
성공한 일중독자도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노숙자도 아닌,
나름대로의 내 길을 만들어 가야 겠다는 것...
아직 이름은 정하지 못했지만,
나만의 집을 지어 거기에 내가 정한 이름을 붙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
이 조그마한 블로그가 그 길의 시작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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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8/03/18 11:32 | 길 위에서 | 트랙백(15) | 덧글(0)





휴우~~멋지네여.
이름을 가진 집이라...
lapis 님 한숨의 정체는... ㅎㅎ
교수님 허락을 받고 올리는 게 아니라 좀 죄송스럽긴 하지만,
"월간 음악" 하고 중앙일보에도 소개되었던 집이니
괜찮을 것 같네요...
사실 왠만큼 성공한 사람 아니면 감히 꿈도 못꿀만한 수준의
집과 장식, 오디오 장비이긴 하지만
뭐 나름대로 자기 식으로, 자기 취향대로, 자기 집을 꾸미면 되지 않을까요?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2층의 내 공간에 한때 사랑햇었던 AV여배우들의 사진을 걸어두리라~
ㅋㅋㅋ
혹시 어떤 AV 여배우들을 좋아하시는지요?
저하고 취향이 비슷한가 보게요...
제 취향대로 집을 꾸미는 날이 오면
절반은 텃밭, 나머지 반 중의 반은 부엌, 그 나머지의 반은 발효음식 저장고,
그리고나서 손바닥만하게 남을 공간에서 희희낙낙하며 새우잠을 잘 사람이
저라고 주변인간들이 주장하네요. -.-
또띠야님 글을 읽으면서
사람을 식물성과 동물성으로 나누면
식물성 쪽에 속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이 맞는 것 같네요.
그리고 손바닥만한 공간에서 희희낙낙하며
새우잠을 같이 잘 사람은 챙기셨는지,
괜히 궁금해집니다... ㅎㅎ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러시아말로 스빠씨바... (쩝.. 욕같지만)
베트남말로 까먼~...